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디즈니는 왜 ‘악인’을 점점 줄이고 있을까?

by 쬬슐랭 2026. 2. 23.

디즈니는 왜 ‘악인’을 점점 줄이고 있을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는 비교적 명확했다. 선한 주인공이 등장하고, 강렬한 악인이 갈등을 유발하며, 결말은 악인의 패배로 정리된다. 우르술라, 자파, 말레피센트 같은 인물은 이야기의 긴장을 책임지는 중심 장치였다. 관객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명확히 인식했고, 갈등은 제거를 통해 해결되었다.

그러나 최근 디즈니 작품을 살펴보면 이 공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절대적인 악으로 규정되는 인물은 줄어들고, 대신 오해와 두려움, 상처, 신뢰의 붕괴 같은 감정이 갈등의 중심으로 이동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캐릭터 설정의 수정이 아니라, 서사의 구조 자체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 절대 악에서 ‘상처 입은 존재’로의 이동

이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은 실사 영화 〈말레피센트〉다. 과거 애니메이션에서 말레피센트는 단순히 저주를 거는 마녀였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녀를 배신과 상실을 겪은 존재로 재해석한다. 악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상처에서 비롯된 선택으로 설명된다.

이 지점에서 관객의 시선은 바뀐다. “왜 저렇게 나쁜가?”라는 질문 대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악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된다.

2)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감정

〈겨울왕국〉은 전통적 의미의 악인을 거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 한스가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핵심 갈등은 엘사의 두려움과 고립이다. 문제는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에 갈등이 해소된다.

이 구조는 중요한 변화를 드러낸다. 악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존재가 아니라, 통제되지 않은 감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자기 이해의 과정이 중심이 된다.

3) 가족 내부의 긴장도 갈등이 된다

〈엔칸토〉에는 명확한 악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갈등은 가족 내부의 기대와 압박에서 발생한다. 아부엘라는 엄격하지만, 악인은 아니다. 그녀 역시 상실의 기억을 지닌 인물이며, 그 두려움이 통제의 형태로 나타났을 뿐이다.

여기서 디즈니는 갈등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대신, 서로 다른 상처가 충돌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해결 역시 누군가의 패배가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인정하는 순간에 놓인다.

4) 불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갈등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역시 절대 악의 구조를 희석한다. 위협적인 존재가 등장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 사이의 불신이다. 나마리는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인물이다.

영화는 질문한다.

“진짜 적은 누구인가?”

갈등의 해소는 파괴가 아니라 신뢰의 회복에서 이루어진다. 디즈니는 악을 쓰러뜨리는 이야기 대신, 관계를 복원하는 이야기를 선택한다.

5)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현대 사회의 갈등은 단순하지 않다. 명확한 악인 한 명으로 설명되는 경우는 드물다. 오해, 구조적 문제, 세대 차이, 트라우마가 얽혀 있다. 디즈니는 이 복잡성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절대 악인을 세우는 방식은 이해를 단순화하지만, 동시에 현실과의 거리를 만든다. 반면 상처와 맥락을 보여주는 서사는 관객에게 더 깊은 공감을 유도한다.

이 변화는 도덕적 회색지대를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선과 악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같은 인간 안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결론

디즈니가 악인을 점점 줄이는 이유는 선악 대립의 구조에서 관계 중심 구조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갈등은 더 이상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 된다.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대신, 상처를 직면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결말이 선택된다.

가장 큰 적은 타인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최근 디즈니가 보여주는 변화의 핵심이다. 악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더 복잡해진 인간과 더 깊어진 관계의 이야기다.